출처 : http://cafe.naver.com/prnamu/131
찰스 존 허펌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년 2월 7일~1870년 6월 9일)는 사실 전성기를 맞은 19세기 영국 문학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다.
디킨스는 영국의 포츠머스에서 해군 하급 관리였던 존 디킨스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배로의 여덟 아이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두 아이는 어렸을 때 죽었다.). 잠깐 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채무 관계로 감옥에 가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는 12살 때부터 구두약 공장, 병에 상표를 붙이는 공장 등을 다니며 일을 해야 했다. 자서전적인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1849∼1850)에는 자기도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디킨스가 노동 계급으로 굴러떨러져 느끼는 고통과 좌절감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때 함께 일하던 구빈원 아이들을 알게 되었다. 구빈원이란, 버려진 고아들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가두고 일을 시키는 수용소로, 종종 이들을 밖의 공장에서 일을 시키고 그 임금을 착취하는 경우도 많았다.
디킨스는 나중에 이 이야기를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라는 작품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그리기도 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에서도 이때 디킨스가 느낀 한이 절절이 묻어 나온다. 바로 현재의 크리스마스 유령이 보여 준 두 아이, ‘무지’와 ‘궁핍’이 나오는 장면이다. 작가는 유령의 입을 빌어 이렇게 경고한다.
이 사내아이 이름은 ‘무지’이고, 이 여자 아이는 ‘빈곤’이라고 한단다. 이 둘은 물론 저런 지경에 빠진 모든 아이들을 조심해라. 그중에서도 특히 이 사내아이, 즉 무지에 대해서는 각별히 조심해라. 이 사내아이의 이마에 적혀 있는 글자가 보이는구나. ‘멸망’이라는 글자야. 누군가 지우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거야.
<19세기 말 영국의 유리병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 노동자들>
<19세기 중엽 영국의 탄광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
가난하게 사는 것도 문제지만, 배우지 못하면 영원히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어린 시절의 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다시 학교에 들어간 그의 학창 시절은 열다섯 살로 끝났고,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되었다. 열다섯 살 때 변호사 사무실의 심부름꾼을 시작으로 대영박물관 자료 검토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속기를 배워 의회 관련 기사를 썼으며, 몇몇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물두 살(1834년)에 <모닝 크로니클(The Morning Chronicle)>이라는 신문사에서 의회 담당 기자를 거쳐 <이브닝 크로니클(The Evening Chronicle)>의 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보즈’라는 이름으로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제 눈물겹던 '노동자' 디킨스의 시대가 끝나고 ‘작가’가 중산층의 대열로 들어설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쉴 새 없이 작품을 쏟아 냈는데, 어쩌면 그는 최초의 자본주의적 공장형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는 거의 모든 작품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했고, 분량이 채워지면 책으로 묶어 내고, 후속편을 내서 시리즈를 만들었다. 나중에 소설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디킨스는 직접 잡지를 창간해서 여러 작가들과 공동 작업으로 책을 만들기도 했으니, 혼자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는 다른 작가들과는 분명 달랐다. 게다가 그의 작품에는 빠짐없이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최고의 교육을 거쳐 고상한 글을 쓰던 당대의 문학가들과 비교하면 출신, 글의 소재, 책을 내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정말 새로운 모습의 작가가 등장한 것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수많은 히트작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크리스마스 캐럴』일 것이다. 1843년 12월 17일 처음 나온 이 작은 책은 그해 크리스마스이브 하루에만 5000권이 팔려 나갔다. 이후에 이 책은 다양한 형태로 편집되어 출간되었고, 160년 동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로 각색되어 연극과 영화로 무대에 올려졌다. 그리고 영어권 사회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없어서는 장식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디킨스는 이 책이 히트를 친 뒤, 거의 매해마다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했다. 아니 그 후로 거의 모든 작품에, 심지어 크리스마스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삼았다. 1870년 6월 9일 디킨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돌자, 런던에서 손수레 행상을 하던 어느 소녀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디킨스가 죽었다고? 그럼 크리스마스의 아버지도 죽은 건가?”
한마디로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덕에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킨스는 실제로 혼자 힘으로 영국식 크리스마스 축제를 만들어 냈다.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축제 분위기가 되는 것은 1830년대와 40년대에도 이미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면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돌아보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도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헐벗은 40년대’라고 일컬어질 정도였던 1840년대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었던 노동자 계급에게는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곤란한 시기였다. 1843년 12월 23일자 <픽토리얼 타임즈(The Pictorial Times)>에 실린 ‘모두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를’이라는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웃음 띤 얼굴들이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하며 이 즐거운 계절에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벽난로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우고 식탁에 음식이 가득 차려지는 동안, 온기도 없는 오두막집에서 빈약한 식탁에 모여 앉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아니 그보다 더욱 가여운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 집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이들을….
이런 식의 훈계조 교훈을 담은 것도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은 중산층 가정에서 하인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화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모습을 그리는 게 전부였다. 밑바닥 인생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초점을 둔 크리스마스 관련 작품으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최초였던 것이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발표된 해인 1843년 초에 의회에서 나온 <아동 고용 실태 보고서>를 보고서 엄청 충격을 받고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부자들의 마음을 열어 줄 강력한 작품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는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를 선택해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쓰는 동안 마치 열병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혼자 울다가 웃고, 또다시 울고, 남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밤새도록 빈민가 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짙은 갈색 표지에 금박 글씨와 테두리를 한 예쁜 책자가 크리스마스이브를 강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가난한 자들에게 사회적 관심을 돌리자는 목적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독자들은 『크리스마스 캐럴』 속 ‘무지’와 ‘가난’이라는 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컴컴한 공장에 처박혀서 살아야 하는 ‘어린 노동자’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찰스는 ‘현재의 유령’의 입을 통해서 미친 듯이 굴러가는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해 끔찍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디킨스는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부유한 자들이 깨닫고 이들을 돕는다면 보다 친절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독자에게 보여 준다.
당시 노동자들의 실정을 감안하면, 밥 크래칫 집안에서 거위 요리까지 등장한, 소박하지만 푸짐한 저녁 식사 장면은 사실 중산층의 식탁에 가깝다. 아이들까지 돈벌이에 내보내야 했던 노동자층의 저녁 식사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당시 최대의 쟁점이었던 노동자들의 차티스트운동 같은 것은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는다. 당시에 책을 사서 볼 수 있는 독자들이라고는 중산층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버림받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렸던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리뷰지(Westminster Review)>(1844년 1월 호) 역시 디킨스가 정치경제학의 관점을 무시하고, 칠면조도 먹지 못했던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에 눈을 감아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캐럴』이 어떻게 글을 읽지도 못하는 어린 노동자들에게까지 유명해진 것일까? 디킨스는 이 작품을 소재로 전국 각지를 돌며 무대를 차려 놓고 127번 이상이나 낭독회를 가졌다. 나중에는 돈벌이로 바뀌었지만, 처음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선 모금 행사로 다른 여가를 가질 수 없었던 하층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따뜻하게 그린 이 흥미진진한 유령 이야기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디킨스는 19세기 영국의 사실주의 작가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사실주의 작가들과는 많이 다르다. 다른 작가들이 사실적으로 글을 썼던 것과는 달리 그의 작품에는 유령이 등장하고 환상이 넘친다. 그러나 그것은 어김없이 자본주의의 화려한 욕망 아래 숨겨진 인간의 고통과 파멸이라는 사실을 겨냥하고 있었다. 인간의 깨달음이 미래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현재의 우리는 찰스 디킨스의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현재의 자본주의는 그 시대의 자본주의로부터 얼마나 멀리 비껴나 있을까?
sitemap
